거리에서 나베파티하면서 투쟁하기? 마츠모토 하지메 오와라이外



다른 포스팅에 올린 라디오 프로그램 "LIFE"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알게된 일본 사회운동가로 마츠모토 하지메라는 사람이 있다. 3명이서 데모하려고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몇백명이 모여들어서 완전 난리난 적도 있고, 데모한답시고 거리에서 생선 구워먹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막 생선구이 냄새 맡고 홀린 듯이 같이 퍼져 앉아서 생선 구워 먹고 막 너무 웃긴거다. 찾아보니 KBS에서 취재를 한 적도 있어서 그 다큐를 찾아서 봤는데 라디오에 마츠모토 하지메 본인이 나와서 썰을 푼 것보다는 재밌지 않았지만, (LIFE "운동(movement)"편에는 마츠모토 하지메 뿐 아니라 이런 패러디이런 패러디로 유명한 토야마 코이치가 같이 나와서 완전 대박 웃겼기 때문에...) 그래도 실제 가게 모습이나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서 나름 좋았다. 



마츠모토 하지메씨 (36세)
















위의 사진처럼 얼짱;;은 아니시고, 그럭저럭 괜찮게 생기시긴 하셨음...




일단, 어떤 사람인지 위키 번역을... 


 

 

마츠모토 하지메(松本哉), 1974 10 17일생 도쿄 출신


 

일본의 좌익활동가이자 고물상 주인. 도쿄도 스기나미구 코엔지에서 리사이클샵을 경영하며, 임의단체 가난뱅이 대 반란 집단의 주관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력


도쿄도 세타가야구 쿄도에서 태어나 고토구 카메이도에서 성장함. 양친이 이혼한 후에는 신주쿠에 거주. 1994년 호세이대학 법학부 제2정치학과에 입학. 1996년 호세이대학 이치가야 캠퍼스 재개발을 계기로 자칭 게릴라조직 호세이의 가난함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한다. 이 모임은 수업에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이 갈 곳을 보전하고 학생생활을 개선하며 학비 인상에 반대하며, 교사 개축에 반대하는 등의 주장을 펼치며

 

- 나베 투쟁 (옥외에 고타츠를 갖다 놓고 나베요리를 해 먹으며 술을 마시는 투쟁)

- 음주투쟁 (고타츠나 TV등을 들고 와 줄창 술을 푸는 투쟁)

- 야키니쿠 투쟁 (대학 당국의 사무실 앞에 고타츠를 갖다 놓고 야키니쿠-불고기를 해먹는 투쟁)

- 자반고등어 투쟁 (사무실 앞에서 자반고등어를 구워 먹는 투쟁)

- 학식 투쟁 (맛이나 가격에 불만을 토로하는 집단으로, 학생식당에 미코시*를 이고 난입하여 결국 가격인하라는 결과를 얻어내었다)

* 미코시 : 마츠리 때 사람들이 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신사로 향하는 대형 가마.

 

등의 투쟁을 하였다. (이게 무슨 투쟁이야 아 웃겨... 이거 유튭에 가보면 동영상이 간간이 떠 있는데 진짜 웃긴다...) 활동을 거듭함에 따라 이러한 투쟁에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하게 된다. 아이치대학에 찬동자가 생긴 것을 계기로 상부 단체 전 일본 가난뱅이 학생 총 연합” (약칭 전빈련크하하;;; 저는 주석을 별로 안 달고 싶은데 전빈련은 너무 웃기지 않나요;;)을 결성하여 일본 각지의 13개 대학 (1999년 시점)에 지부를 둔 조직으로 발전한다. 2001 3월 마츠모토는 호세이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4월에는 동 대학 통신교육과정 문학부에 재입학한다. (이거 아무래도 공부하려고 재입학한 게 아니라 운동하려고...) 같은 해 9, 호세이대학에서 개최된 일본사립학교연맹 주최 시민강좌에 동료들과 난입하여 사립대간부와 재계인사들에게 분말소화제를 분사하는 등의 행위를 하여 익년인 2002 1월 체포되어 7월 경에 제적당한다.

 

 


가난뱅이 대반란집단


법학부를 졸업한 후, 임의단체 가난뱅이 대반란집단을 결성하여, “크리스마스 분쇄집회라고 자칭하며 롯폰기 힐즈에 앉은뱅이 책상을 가지고 들어가 나베요리를 시작하려고 하나, 경찰관 300인에 의해 저지당한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솔로들이여 단결하라 하는데 실행에 옮기는 분은 없었던 듯... 아, 취지가 다른가요 참;) 2005년 코엔지에 리사이클샵 아마추어의 반란을 개점한다. 후에 마츠모토 하지메에게 모여든 사람들 중 동명의 점포를 개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코엔지에 까페 등을 포함하여 총 5개 점포의 아마추어의 반란이 생기게 된다. (2007년 시점)

2005, “코엔지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니트족) 조합이라는 단체명으로 방치된 자전거의 철거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100명 규모로 가두행진을 한다. 이 데모는 DJ나 음향장비등을 실은 트럭이 선두에서 음악을 틀고, 술을 마신 사람들, 춤 추는 사람들 등이 따라가는 형태였다. 실제 참가인원(100명에서 200명 정도)이 사전에 공안위원회에 신청한 참가인원(3)을 훨씬 웃도는 데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데모대에 참가한 바람에 큰 소동이 되어버렸으나, 데모의 책임자로서 신청서를 제출한 인물은 (아마도 마츠모토 하지메가 아닐까...;;) 도중에 변장하여 도망쳐버렸다. 익년인 2006, 마츠모토 하지메는 철도 역사 구내 화장실의 티슈 무료화를 요구한다는 명목으로 친구 2명과 함께 데모행진을 하나, 3명 다 플래카드도 안 들고, 뭔가를 외치지도 않고 극히 평범하게 걷기만 했다고. 사전에 참가자가 3인이라고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에는 200명이 넘는 경찰이 출동하여 데모를 감시했다. (이것이 마츠모토가 말하는 제1차 3인 데모(결국 수백인 데모가 되어 버린;;;)와 제2차 3인 데모라는...) 
같은 해 3, PSE 문제(PSE마크가 없는 중고 전자제품을 사고팔 수 없게 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쇼와시대에 사용되었던 레트로 가전도 (악기 등도 거래 금지) 문화재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00명이 모여 전자제품 안전법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쓸데없이 소비를 조장하는 행위에 항의한다는 명분으로 크리스마스 분쇄집회라는 이름으로 신주쿠역 앞 거리에 고타츠를 놓고 나베요리를 먹는 것을 경찰 20명 가량이 에워싸기도 했다.

 

 


선거 출마

 

마츠모토 하지메는 정치가 젊은이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층의 투표율이 낮다고 생각하고, 사회에의 직접 주장이 가능한 귀중한 기회라며 지인들에게 투표하기를 권해왔다. 2007 4월에는 거리 해방”, “방치 자전거 철거 반대등을 기치로 스스로 스기나미구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코엔지역 앞에서 DJ와 음향장비를 사용하여 큰 소리로 록 밴드 공연을 하고, 춤을 추는 등의 가두연설을 며칠 밤에 걸쳐 하였다. 이 선거에서는 1,061표를 얻어 낙선한다. 후에 마츠모토 하지메는 입후보한 이유를 데모에선 음악을 틀거나 하는데 규제가 엄격하나, 후보자 선거활동이라는 명목 하에 하면 경찰도 어설프게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 보고, 거리를 패닉으로 만드는 작전에 성공했다고 술회했다. 

 


이건 선거운동 마지막날의 모습;; 마츠모토 하지메를 헹가레 치는 사람들;; 




















 


 

사상


학생시절에는 부르주아 대학화 반대라는 주장을 펼치며 기존의 학생운동을 패러디한 듯한 수법으로 활동을 해 나갔다. 당시 작가 타테마츠 와헤이는 마츠모토 하지메 등의 활동을 재미있다고 평했다. 후에 마츠모토 하지메는 기존의 학생운동을 그럴 듯한 얘기를 늘어놓는다고 평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이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주장을 하려는 때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 본인의 적성에도 맞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하고 술회했다.

가난뱅이를 부려먹는 부자를 적시(敵視)하며, 대학 졸업 후에도 거리에서 가난함을 주창하는 활동을 하였다. 마츠모토 왈 현대 일본사회는 쓸데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으며, 어떤 일을 할 때에도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한편, 부자를 위해서 장시간 노동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는 그다지 돈을 쓰지 않고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고 마츠모토 하지메는 주장하고 있으며, “만약 그런 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일본 전역에 생겨나 서로 연대한다면, 그야말로 혁명의 실현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기존의 좌익운동은 재미없다라고 느끼며 어려운 사상을 주장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때로 데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단순히 주장을 외치는 것 뿐인 데모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실제로 해 보이는 행위 쪽이 데몬스트레이션이라는 말의 뜻에 맞지 않나라고 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예로 거리 라이브나 나베집회 등이 있다. 마츠모토 하지메는 규제나 억압이 적어 자유롭게 거리에서 난동을 부린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할 수 있는 세상을 이상(理想)이라 말하며, 거리 라이브 등은 혁명 후의 세계를 실제로 만들어 보이는 행위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롯폰기 힐즈에서 크리스마스 분쇄를 주장한 이유는 롯폰기 힐즈가 크리스마스에 편승한 상업주의의 상징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모리 요시타카는 크리스마스 분쇄”, “방치 자전거 철거법 반대라고 하는 주장을 자본주의나 경찰국가권력에의 비판이라 보고 마츠모토 하지메 등의 활동이 기존의 좌익이 잃어버리고 만 재미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평하였다.  

 

 


저서-편서

 

가난뱅이의 역습! 공짜로 살아가는 방법” 2008

니키 신 공동 편집 아마추어의 반란” 2008

스즈키 켄스케 공저 굿바이 하류사회” 2008

가난뱅이 대반란” 2008

 

 

경영하시는 리사이클숍 "아마추어의 반란" 앞에서 한 컷 (눈 뜨세요;;)
























 

이 사람이 대학 시절에 하던 운동이 "호세이 대학의 가난함을 지키는 모임"이란 건데, 이게 또 웃긴다. 
역시 위키 번역을...



호세이의 가난함을 지키는 모임은 1996 9월 당시 호세이대학 학생이었던 마츠모토 하지메에 의해 설립된 일종의 학생운동 집단이다. 외부로부터 불리운 약칭은 빈보(가난뱅이)”

 


발단과 운동


당시, 호세이대학에서는 이치가야 재개발”, “대학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기존의 교사를 개축하고, 커리큘럼을 개정하고, 학비를 인상하는 등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마츠모토 하지메를 중심으로 저항운동을 하기 위해 결성하였다. 동 대학에는 종래 학생운동을 해 왔던 신 좌익 섹트가 있었으나 이들과 노선이 다르다고 느낀 이 모임의 일동은 확성기, 삐라, 입간판, 집회라고 하는 기존의 학생운동적인 스타일을 패러디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의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구체적으로는 캠퍼스 내에서 대량의 삐라를 뿌리고, 술과 냄비(나베)요리, 고타츠를 가지고 와 나베파티를 하여 학생들과 연대를 강화한다거나, 미코시(일본에서 축제를 할 때 으쌰으쌰하고 어깨에 짊어지는 그것!)를 이고 학내를 돈다거나,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며 총장실을 방문하는 등의 운동방법이 그것이다. 이 운동에 의해 이 모임은 매번 대학당국으로부터 경고, 주의 등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의 주장은 대학이란 본래 학생이 자유롭게 연구를 행하는 장소인데, “대학개혁이란 기치에 의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장소로 변질되려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학이 가난하다면 학생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고 하여, 2(야간)의 설치 및 폐지, 힉비 인상 등의 개혁에 의해 대학이 부르조아화되는 것에 반발하였다. (이상 마츠모토의 저서 가난뱅이의 역습! 공짜로 사는 방법및 잡지 문예” 1999년 여름호에서 발췌)

 

 


쇠퇴

 

2001 9 21일 동 대학 고층교사 보아소나-도 타워의 스카이홀에서 개최된 일본사립대학연맹주최의 심포지움에서 검은 헬멧, 백의, 가면을 착용한 모습의 20명 정도의 집단이 회장에 난입하여 페인트를 뿌리고 소화기를 분사하여 이를 방해한 이른바 “9. 21 보아소 테러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실행범들이 동 대학의 학생회관 (2004년 철거됨)으로 도망간 뒤, 학생회관에 경찰의 조사가 미쳐 무관한 학생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체포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학생연맹(2004년 해체됨)은 체포자들의 구원에 나서는 한편, 실행범들의 과격한 행동 및 경찰의 조사에 대하여 순순히 자백한 것을 비난하여, 그 실명을 게시하여 영구 추방처분을 내렸다. 실행범 중 다수가 호세이의 가난함을 지키는 모임소속으로 밝혀지고 마츠모토 하지메도 체포-기소 되었다. 그는 후에 저서 가난뱅이의 역습!” 등에서 이 사건을 주모했음을 고백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임은 급속히 학생들로부터 지지를 잃었으며, 마츠모토가 제적당한 2002년 이후, 호세이대학에서 이 모임은 사실상 소멸하였다.

 

 

 

사실 이 포스팅은 웃자고 올린 것만은 아니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에 포스팅을 해 본 것으로, 나는 학비가 싼 국립대를 다녔고 전혀 운동권과는 연이 없었지만 요 몇 년간 뉴스를 볼 때마다 사회가 특히 대학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학비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학교에 새 건물 생겼다고 맛있는 커피 마시기 편해졌다고 좋아라 하는 건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렵다. 마츠모토 하지메를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로, 일본에서 호세이 대학이 갖는 이미지가 안암동 K대와 비슷하다고 한다. (지방 출신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며, 세련된 느낌 보다는 약간은 투박한 느낌이 강한) 그런데 몇 년의 사이를 두고 벤치마킹이라도 한 듯이 교사 개축, 학비 인상 등으로 이미지 혁신을 꾀해왔던 행보가 비슷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실 K대를 기점으로하여 지금은 이 학교나 저 학교나 다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더이상 학생이 아니지만, 작년 성신여대 학생들이 힘을 모아서 얻어냈던 "환경미화원 해고 저지" 같은 뉴스가 좀 자주 들려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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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가고일 2009/03/26 18:29 # 답글

    좌익이라기보다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행보군요.
    방법에는 논란이 있겠지만 그 이상에는 공감하는 바입니다.
  • 스트로보 2009/03/26 18:35 #

    무엇보다 방식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길에서 생선을 구워먹고 학교식당에 미코시를 이고 갈 생각을 하다니! 세대가 세대라 그런지 저도 띠 두르고 하는 시위에는 (아직 유효하고 필요할 지라도) 거부감이 없지 않은 터라...
  • 가고일 2009/03/26 18:37 #

    우리나라 촛불시위도 출발은 그런 거부감에서 나왔다고 보는데 확실하게 그걸 밀고 나갈 여건이 안되는거 같습니다...
  • 스트로보 2009/03/26 21:44 #

    사실 이 분도 일본 사회에서 절대 메이저가 아닌지라... 마츠모토 하지메 쪽이 좀 더 유니크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촛불시위가 규모도 더 컸고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즐거운 방식들이 더 많이 생긴다면 좋겠지만요.
  • rumic71 2009/03/26 19:38 # 답글

    제나 억압이 적어 자유롭게 거리에서 난동을 부린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할 수 있는 세상 - 바이마르 공화국. 그 결말은?
  • 스트로보 2009/03/26 21:32 #

    저에게 질문을 던지시는 겁니까?
  • rumic71 2009/03/26 21:35 #

    아니요 그냥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 뿐입니다.
  • 스트로보 2009/03/26 21:40 #

    번역을 하면서 이 단어 좀 미묘한데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아서 첨언합니다. 원래 단어는 大騒ぎ라고 해서 떠들썩한 소동, 난장 정도의 의미로, 한국어의 "난동"과는 약간 의미가 다릅니다. 의미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번역한 제 실수구요.
  • rumic71 2009/03/26 21:42 #

    '술마시고 난동' 이라고 생각해보니 대충 감이 잡힙니다. 마쓰모토가 뭘 원하는지도 대략 알 것 같네요.
  • soulskate 2009/04/03 22:05 # 삭제 답글

    재미있군요. 잘 읽었습니다! 지식이 폭넓으시네요.
  • 스트로보 2009/04/07 00:01 #

    soulskate/별 말씀을요. 저도 다 위키에 정리된 걸 서툴게 번역만 했을 뿐인걸요~
  • Reina 2009/04/06 13:03 # 답글

    활동 내용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운동 방식도 신선하고!
  • 스트로보 2009/04/07 00:01 #

    Reina/실제로 인터뷰 같은 것 들으면 더 웃겨요. 유튜브 가보면 3인 데모나 생선 구워먹는 영상 같은 거 올라와 있기도 한데 웃겨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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