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쵸카쵸 위키 번역 오와라이




























지쵸카쵸(차장과장)


 

지쵸카쵸는 일본의 오와라이 콤비이다. 소속사무소는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본부. 약칭 지카쵸라 부른다. 둘 다 오사카 NSC 13기생이며, 1994 4월 결성하였다. 당초 트리오였기 때문에 그룹명이 지쵸카쵸샤쵸였다. (차장과장사장) 콤비명은 오사카부에서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했던 이자카야에서 사원이었던 차장님과 과장님에게 돈을 받는 등 격려를 받았던 것에서 비롯됨. 

무대에 등장할 때 흐르는 음악은 에이유우지코(영웅사고)” (성룡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 주제가)

 


 

멤버

 


코모토 준이치 1975 4 7일생

보케 담당이나 토크에서는 츳코미 담당.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호우칸쵸 출신 (태어난 곳은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도리구 아리마츠쵸) 시립 쿄야마중학교, 오카야마현립 히가시오카야마 공업고등학교 졸업. 162센티 66킬로 혈액형은 AB

 

이노우에 사토시 1976 2 2

츳코미 담당이나 토크에서는 보케 담당.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호우칸쵸 출신 (태어난 곳은 구마모토현 타마나시) 시립쿄야마중학교 오카야마학예관고등학교 (구명 : 카나야마학원고등학교) 졸업. 175센티 58킬로. 혈액형은 B

 

 


약력 / 개요


 

중학교 고교 시절

 

오카야마시립쿄야마중학교 시절에 야구부에서 서로 알게 됨. 뒤늦게 입부한 코모토가 처음으로 연습에 참가한 날에 감독이 부원에게 캐치볼을 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배트를 들고 풀스윙을 하고 있던 이노우에에게 말을 걸어 함께 캐치볼을 한 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매일같이 함께 노는 사이가 됨. (두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후 지금까지 한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둘 다 운동신경이 발군이었으나 공부는 못했다. 중학교 3학년 때 8000명이 치는 오카야마현 내 모의고사에서 코모토가 7980, 이노우에가 7982등이었다. (from “시무라켄의 바카도노사마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본인들은 이노우에가 7990, 코모토가 7991등이었다고 말했음./ 당시의 편차치가 코모토는 23, 이노우에는 21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할 수 있을지 선생님도 고민했으나 이노우에는 야구로 스포츠추천을 받아 사립고교에 진학하고 코모토는 정원미달인 고교를 발견하여 현립고등학교에 입학함.

 

참고로 오카야마현의 진학사정에 대해 설명하자면, “사립보다 현립”, “전문과보다 보통과쪽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진학한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오카야마시내에서는 오카야마 5고교를 정점으로 한 진학 서열이라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유명하다. 좀 더 설명하자면, 유명사립고의 특별진학코스등의 예외는 있지만, 위로부터 오카야마 5고교 및 쿠라시키 4고교 -> 그 외의 현립 보통과 -> (오카야마, 쿠라시키) 시내 중심부의 사립고교 보통과 -> 현립 전문과 -> 교외 사립고교 보통과 -> 사립고교 전문과순이다. 더구나 톱인 오카야마 5고교 및 쿠라시키 4고교 이와의 학생은 거의 도토리 키재기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각자 다른 고교에 진학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멀어지기도 했으나, 고교 2학년때에 코모토가 이노우에의 집에 놀러 와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교류가 깊어져 자주 같이 놀게 된다.

 

코모토는 초등학교 때부터 9년간 축구를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팀의 캡틴을 역임하였으며,오카야마현 선수 선발에도 나간 적이 있다. 그러나 고교 3학년 때의 가을, 어느 시합에서 슛을 실패한 것이 코모토의 축구 인생을 엇나가게 하여, 축구부를 탈퇴하게 결심하게 만든다. 그 후 같은 축구부이며 반 친구였던 야마시타 마사토(후에 트리오를 결성한)와 특히 오와라이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아마츄어 명인회라는 프로그램에 나간다. 만자이를 하여 첫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감투상을 탔다.

 

고교 졸업 후, 코모토는 취직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나, 이노우에는 친척이 경영하는 유리샤시의 틀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모토가 요시모토에 들어가자! 성룡이랑 만날 수 있다니까!”하며 꼬신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노우에를 꼬신 이유는 친구들 중에 이노우에가 제일 웃겼기 때문에

 


 

오사카 시절


 

두 사람은 NSC에 입학하기 위해 18살에 고향 오카야마로부터 오사카로 이주한다.

 

NSC 면접시험에서 코모토는 오와라이에 대한 마음가짐을 뜨겁게 어필하여 합격했으나 이노우에는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음에도 합격하였다. (진나이 토모노리 왈 “NSC는 잠자코 듣고만 있으면 합격할 수 있는 듯하다”)

 

1994 4월 결성. NSC 재학중에 코모토 준이치, 이노우에 사토시, 야마시타 마사토의 트리오로 지쵸카쵸샤쵸였으나 불과 1년 사이에 샤쵸의 야마시타가 오카야마로 돌아간다는 편지만 남기고 사라져버려 콤비가 되었다.

 

결성 당시에는 셋이서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되어 쫓겨나 버렸다. 

 

샤쵸(야마시타)는 현재 도쿄 신주쿠의 이발소 <Ciel>에서 미용사로서 일하고 있다. (실제로 커밍다웃” 2005 3 22일 방송분에서 판명됨. 같은 해 12월에 방송된 하나마루 마켓에서는 샤쵸의 VTR 인터뷰가 방송됨.)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야마시타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다고 하였으나 요금을 다 받겠다고 하는 터에 실제로 머리를 하러 간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교우관계는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와랏떼 이이토모텔레폰 쇼킹에 처음 등장했을 때에 전보를 보내준다거나 가끔씩 루미네 쟈 요시모토에 네타를 보러 온다거나 하는 등 누구보다도 지쵸카쵸를 응원하고 있다.

 

NSC 동기로는 같은 사무소의 야성폭탄, 블랙 마요네즈, 츄토리알의 토쿠이 요시미, 루트33의 마스다 히로유키 등이 있으며, 현재는 배우인 미우라 세이미가 있다. 또한 요시모토 외부로 이적한 사람 가운데 후지이 히로카즈(토비이시렌큐), 쿠와바타 리에(쿠와바타오하라), 신가타 이글-신가타코브라-신가타맘모스-신가타타이거 (초신주쿠), 모로오카 타츠미가 있다. 이 세대는 꽃의(화려한) 13기생이라 불리운다.

 

거의 동기로는 점프해트, 타카안도토시 등이 있다. 또한 반년 후배로는 가렛지 세루, 풋볼아워, 1년 선배로는 런던부츠12, 돈도코돈, 페널티, 사반나 등이 있다. 나이는 위지만 시나가와쇼지 (시나가와는 3살 위, 쇼지는 같은 학년) 1년 후배가 된다. (참고로 시나가와는 나이 어린 지쵸카쵸에게 “~을 붙여서 부른다.) 

 

코모토는 19살 때 호스트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때때로 보여주는 탬버린 기술은 이 호스트시절에 배운 것이다. 또한, 일했던 호스트클럽에서 넘버쓰리였다고 하나, 이 호스트클럽에는 호스트가 4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인식 때 두 사람은 오랜만에 고향인 오카야마에 돌아가나,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간 터라 식장에 들어가도록 허가를 받지 못하여 성인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가난했기 때문에 수트를 구입할 돈이 없었다고 한다.)

 

1995, 신사이바시스지 2쵸메 극장에서 데뷔한다. 2쵸메 극장 폐관 후에는 1999년에 오픈한 베이스 요시모토의 주력 멤버로서 활약한다. 단독 라이브는 매회 타이틀로 도쿄23구의 구명을 붙여 전23회 개최하였다. 이 라이브 시리즈에서는 풋볼아워, 스트리크 등의 레귤러들이 매회 출연했다.

 

레귤러의 기절 네타는 지쵸카쵸가 생각한 것으로, 마츠모토 겐타는 이노우에의 집에서 반년간, 코모토의 집에서 1년간 신세를 졌다고 한다.

 

코모토가 추간판 헤르니아로 입원했을 때, 이노우에는 사제관계인 켄도 코바야시와 콤비를 꾸려 함께 학원제 등에서 일을 했다. 츳코미 없이 보케에 보케를 더한 형태의 네타를 선보여서 굉장히 좋은 평을 얻었다.

 

그러나 코모토가 퇴원한 직후에 한 지쵸카쵸 단독 복귀 라이브에서는 전혀 웃기지 못했다. 극장 3층에 있는 서점 계산대의 칭-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웃기지 못해 극장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차일드머신(해산함)이 도쿄에 갈 때, 가라오케에서 엉엉 울면서 샤란큐의 상경이야기를 부르며 이들을 배웅했다.

 

2001년에 딱 한번, 1 M-1 그랑프리에 출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2회전에서 콩트를 하여 탈락하였다.

 

2002 9 23, 도쿄 23구의 최종 라이브 중앙 지카쵸로서 이들의 의향에 따라 베이스 요시모토를 졸업한다.

 

졸업 라이브에서는 407명이라는 베이스 요시모토(좌석수는 233ㅛㅓㅅ) 관객동원 기록을 세우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도쿄 진출 후

 


2002
10월 도쿄진출

 

도쿄에서는 지명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로에서 시작하였다. 루미네 요시모토의 무대에는 출장하고 있었으나, 다른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괴로운 극빈생활이 계속되었다. (당시의 급료는 오사카 시절의 1/4로 감소)

 

도쿄에서는 한동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으나, 2004년경부터 매니악한 성대모사가 주목받기 시작한다.

 

2003년 가을부터 TBS 심야방송 “U-CDTV”의 네타 피로 코너 오와라이 CDTV”라이브가 시작되어, 지쵸카쵸만이 매달 출연하게 된다. 도쿄에서는 드물게 몇 개의 대표적인 네타가 전부 방송을 타게 된다. 이 방송을 계기로 지쵸카쵸는 도쿄 TV 관계자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한 듯 하다. (당시 매니악한 성대모사의 “V시네마” (당시의 타이틀은 야쿠자의 섹스”) 등도 전부 방송되었다. TBS에서는 오와라이 CDTV” 종영하게 되나, 같은 스태프가 시작한 고로’s 에서 도쿄 첫 레귤러로 이어지고, 이는 또 우타방출연이나 단독 칸무리 프로그램 지쵸카쵸의 요이쇼!”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디가지나 콤비명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차장이고 어느 쪽이 과장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차장 코모토”, “과장 이노우에라는 설정이 될 때가 있다. (“타모리 구락부에 출연했을 때 요시모토 공업(工業)이라는 명함을 내민 적이 있다.) 또한, “메챠이케안의 코너 사랑의 카마사와기에서는 차장아이가 코모토, 과장아이가 이노우에라는 설정도 있었다.

 

동기인 블랙 마요네즈의 요시다는 예전부터 코모토를 차장이노우에를 과장이라 부르고 있다.

 

2005 1 1일 방송된 여기도 생이다, 개그맨 집합! 올해 가장 잘 나갈 요시모토 no.1 결정전 야리니게 GO’05”에서 점을 봤을 때 올해 가장 잘 나갈 개그맨 1위에 뽑힌 것이 이노우에, 반대로 제일 하위로 뽑힌 것이 코모토라는 기적적인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즈바리이우와요” (2005 3 8일 방송)에서 호소키 카즈코로부터 이 콤비명을 쓰면 이노우에가 거지가 된다.”고 지적받아 진심으로 개명을 할까 곰니했으나 일단 개명은 하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에 따라 호소키 카즈코 : 마녀의 이력서 (미조구치 아츠시 )의 인물상관도에도 콤비명이 게재되었음.

 

콩트의 네타만들기 이외에 아이카타인 이노우에를 오와라이의 세계로 불러들인 것도, 도쿄행을 결정한 것도 코모토임. 2005 10 31일 방송된 메자마시 테레비에서도 네타만들기의 주도권은 이노우에, 인생의 주도권은 코모토라고 말함.   

 

2005년 이전, TBS 계열 산마의 슈퍼 카라쿠리TV”의 오프닝을 담당했다. 2005 12 18, 같은 프로그램에 게스트로서 첫 출연함. 장수 프로그램이나 오프닝을 하던 개그맨이 게스트로 출연한 것은 처음이었다.

 

코모토와 이노우에, 각자 오사카 시절부터 가창력이 정평 나 있었다. “오와라이 게닌 가수왕 결정전 스페셜에서는 제3회 대회 우승, 4회 대회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솔로곡 뿐 아니라 둘이서 호흡을 맞춘 아름다운 하모니로 심사위원을 압도했다.

 

이노우에는 먼슬리 요시모토에서 매년 실시하는 요시모토 미남 랭킹에서 2006년도 2위와 배 이상의 득표차를 벌리며 단연 1위로 뽑히다. (루미네 쟈 요시모토의 관객들에게 물었던 안기고 싶은 게닌 랭킹에서도 처음으로 1위를 획득함. “자식 삼고 싶은 게닌에서도 7위를 차지했다.) 코모토는 요시모토 추남랭킹에서 8, 아버지 삼고 싶은 게닌 3위에 랭크인함.

 

이노우에는 2006-2008년까지 3년동안 미남랭킹 1위를 차지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06 3 28일 방송, “! 즈바리이우와요! 호소키 카즈코 생일기념! 2시간 스페셜 제1에서 이노우에가 예능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된 인물이며, 코모토 역시 대단한 팬이라는 성룡과 함께 출연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는 프로젝트A”의 한 씬 테이블 위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 흉내”, 코모토는 너 같은 놈에게 먹일 탄면은 없다!”를 각자 성룡 본인의 앞에서 피로했다.

 

2006 5 3-5 5고키겡요에 출연했을 때, 3회 연속으로 아타리메를 냈다. 같은 해 5 29-5 31일에 다시 게스트 출연하였는데, 이 때 역시 2회 연속 아타리메를 내어 “5연속 아타리메라는 방송 사상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아타리메는 전부 매니악한 모노마네 3연발이었기 때문에 합계 25개의 네타를 피로했다. (같은 프로그램 2006 5월 월간 MVP도 수상)

 

하레루 미치 우주인(네놈들)과 상대할 생각은 없다!”에서 CD데뷰 (2006 5 31일 발표, R and C) JK명의로 발표하였으며, 테레비도쿄 계열 애니메이션 케로로 중사시즌 4의 오프닝 테마로서 2006 4-9월에 방송되었다. 작사에도 참여하였으며, 프로듀스는 코무로 테츠야가 담당하였다.

 

2006 8월에 방송된 “24시간 TV”에서 기획MC DJ를 맡았다.

 

오사카 시절에는 오카야마 억양의 칸사이 사투리를 썼으나, 도쿄진출 이후에는 표준어를 쓰는 일이 많다. (이를 타무라 켄지는 이 자식들이 오카야마도 버리고 오사카도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2008 3 29일 방송된 TBS “올스타 감사제에서 로션을 바르고 스모를 하는 게임 중에 코모토가 쓰러져 가슴을 강타당함. 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늑골골절로 전치1개월의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코모토는 복귀를 자원하여 3일 후에는 특별 프로그램 녹화에 참가하였다.

 

 

 



네타

 

 

최대의 특징은 집요한네타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콤비만의 매력이다.

 

네타는 기본적으로 둘이 함께 만드나, 주도권은 이노우에가 쥐고 있다.

 

신사이바시 스지2쵸메 극장 폐관 (1999 3)경까지 이노우에는 보케, 코모토가 츳코미를 담당했으나, 이후 바뀐다. 그러나 일보 네타에서는 지금도 이노우에가 보케를 하는 콩트나 코모토가 노리츳코미를 하는 패턴도 있다.

 

오사카 시절에는 만자이, 콩트 둘 다 했으나, 도쿄 진출 후에는 콩트를 주로 하게 되었다. 현재는 거의 만자이를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둘 모두 즉흥성을 즐기는 성향이 있어서, 예전부터 준비된 네타를 별로 맞춰보지 않는 편이다. 무대에서 네타를 하는 중에 애드립을 넣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코모토의 보케에 대해 이노우에가 진짜로 웃어버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단독 라이브 등에서 피로하는 콩트에서는 어두운 결말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콩트에서는 코모토가 여러가지 특이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이에 대해 이노우에가 가볍게 츳코미를 한다. 파트너의 머리를 때리는 등의 강한 츳코미는 하지 않는다. (아메토크에서 세키네 츠토무가 이노우에군의 츳코미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라고 평한 적 있다.)

 

발음이 안 좋은 부동산 콩트를 비트 다케시가 “TV에서 처음 봤을 때, 너무 분했다며 대호평한 적이 있다. 또한, 이 네타를 테츠코노 헤야에서 피로했을 때,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드물게 대폭소한 적이 있다.

 

실제로 무대를 찾아와 봐주길 바란다는 두 사람의 의향에 따라, 단독 라이브의 DVD를 발매하지 않고 있다.

 

 



매니악한 모노마네(성대모사 혹은 흉내)

 


두 사람 다 평소에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를 바탕으로 매니악한 시점에서 모노마네를 생각하는 것이 특기이다.

 

원래 매니악한 모노마네는 오사카 시절에 나카가와케와 대기실을 함께 사용했을 때 서로 이런 사람 있지?”라며 세세한 모노마네를 해 보인 것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나카가와케와 공동으로 개발한 네타도 섞여 있다. 지금도 나카가와케와 같은 대기실을 사용할 때는 넷이서 즉흥 콩트를 하곤 한다.

 

폭소 붕어빵 모노마네 홍백가합전 스페셜에서 마이너 모노마네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매회 매니악한 모노마네를 피로하고 있다.

 

모노마네의 레퍼토리는 엄청난 팬인 성룡에 대한 것이 많다.

 

코모토의 대표적인 개그인 너 같은 놈에게 먹일 탄면은 없다!(오마에니 쿠와세루 탄멘와 네!)” (영화 취권에서 조연의 대사)는 실제로 영화 안에 이러한 대사가 있는 것은 아니며, “톤네루즈의 미나상노 오카게데시타에 출연했을 때, 코모토가 애드립으로 떠올린 대사이다. 당시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이후 이 대사를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로 너 좀 닮았으니까 이거 한번 해보면 어때?”하면서 처음에 네타를 생각한 것은 재키 챈 팬인 이노우에였다.)

 

 


출연 프로그램, CM, 라디오, 영화, CD, DVD, 출판물 등은 너무 많아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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