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먹부림 시리즈(…라기엔 진짜 맛있어서 강추할 만한 건 일주일 통틀어 딱 두 번 먹은 듯) 제1탄 <갓포 마토노> 편입니다. 코다이지(高台寺) 근처에 있는데 가게가 골목 깊은 곳에 위치해서 찾아가기가 좀 힘들었어요. 중간에 어느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봤는데 황송하게도 마토노 쪽에 전화해서 길을 대신 물어주신 덕에 찾아갈 수 있었답니다OTL
이런 골목에 위치... 찾아가기 힘들 법 하죠?
이렇게 간판이랄 게 딱히 없는.....
입구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예약한 누구누구라고 말하니 오카미상이 안내를 해줍니다.
안내받아 들어간 곳은 이런 방인데, 제가 좋은 데서 밥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킁;)
더구나 혼자 왔는데 이런 방 하나를 다 내줄 줄 모르고 제일 구석에 앉았는데
결국 식사가 끝날 때까지 1시간 40분 동안 아무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모든 예약 손님은 각자 개인실로 안내하는 모양입니다.
(혼자 온 저 같은 사람은 참... 민폐 아닌 민폐라고 할 수 있;;;;)
메뉴는 한국에서 전화로 예약할 때 이미 결정을 해둔 미니 가이세키 코스
서비스료 10% + 소비세 5%가 포함 4000엔 짜리 메뉴입니다.
전부 오마카세이기 때문에 메뉴가 따로 없고 적혀 나오지도 않습니다.
(모든 기록은 제가 주워들은 걸 바탕으로 한 것이라 100% 정확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ㅎㅎ)
일단 술이나 음료를 주문하겠냐고 묻고 와시(和紙)에 유려한 필치로 가격이 적힌 메뉴를 줍니다.
가격대를 보니 아주 비싼 건 아닌 것 같은데 저는 일단 술을 거의 못 마시기 때문에 패스!
우롱차나 오렌지쥬스, 미네랄 워터도 있긴 한데 어차피 차는 준비해주니까요.
가격대를 보시라고 이 사진만 크게 올립니다. (click!)
연장샷
그리고는 바로 코스가 시작!
오크라 간 것과 잘게 썬 파, 생강 간 것을 올린 타키가와 두부
타키가와 두부는 갓 짜낸 두유를 한천으로 굳힌 뒤 차게 식혀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맛은 콩 비린내 같은 게 전혀 없고 굉장히 섬세한 두부 맛이 납니다. 곁들인 오크라와 생강, 파 등이 맛에서 또 식감에서 청량한 느낌을 주고요. 간은 가츠오다시로 하고요. 자세히 보시면 이게 한 덩어리가 아니라 가늘고 긴 면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타키가와(滝川)”라는 이름이 이 형태에서 붙여진 게 아닐까 싶어요. 모양새도 맛도 여름에 딱 어울리는 메뉴입니다. 단, 젓가락을 갖다 댔더니 두부가 조각나버려서 먹을 때 추하다는 것이…OTL 오크라가 또 미끈미끈하잖아요? 대 추함ㅠㅠ 반드시 함께 나온 숟가락을 사용해서 드셔야 하는 메뉴라는 것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소라와 파래로 만든 신죠에 매실과육과 유자껍질, 오크라 잎(?)을 얹은 것
다음으로 나온 메뉴는 시루모노(국물요리)입니다. 신죠라는 건 다진 고기나 생선살에 참마 간 것을 섞어 경단처럼 빚은 걸 말하는데요. 소라와 파래김으로 만들었다는데 다져서 그런지 소라 살 같은 느낌보다는 어육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꽤 진하게 우린 가츠오다시가 간간하니 맛이 있었어요. 유자 껍질의 향, 매실 과육의 새콤한 맛 등 위에 올린 재료가 눈도 즐겁게 해주지만 맛에 있어서도 여러가지로 변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다시마 다시에 재운 광어 사시미와 흰꼴뚜기 사시미
다음은 츠쿠리입니다. 사시미죠. 제가 날생선류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구로 같은 아카미류가 나오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는데 시로미가 나와서 다행이었어요. 광어는 막 잡아서 살이 단단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다시마로 우린 다시에 재워둔 거라 감칠맛이 돌면서 숙성된 느낌이었고, 흰꼴뚜기는 처음 먹어본 것 같은데 (일본어로는 아오리이카) 일반적인 오징어회랑 좀 다르게 씹을 수록 크리미해지는 색다른 식감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찍어먹을 소스로는 니하이즈(二倍酢)와 간장이 나왔습니다. 니하이즈라는 건 식초와 간장을 동량으로 섞어 만든 것으로 광어를 니하이즈에, 흰꼴뚜기를 간장에 찍어 먹으라고 권하더라고요.
머위, 가지튀김, 참마, 우엉 등의 니모노
가지튀김, 유바, 머위, 참마, 우엉, 콩깍지 등을 가츠오다시에 넣고 찐 것입니다. (졸인 거라 해야 하나? 여튼 니모노...;) 위에 올라간 가루 같은 건 가츠오부시 가루, 그리고 그 위에는 산초 이파리입니다. 쿄료리에는 산초가 정말 자주?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말캉한 재료들이 가츠오다시를 머금고 있어서 맛있었어요. 특히 가지를 옷 입히지 않고 튀겨서 가츠오다시에 재워둔 게 다시를 흠뻑 머금어서 맛있더라고요. (제가 원래 가지를 좋아하기도 하고ㅎㅎ) 중간에 보이는 빨간 게 곤약 같은 식감을 가진 (그러나 곤약은 아닌) 그 무엇이었는데 한꺼번에 설명을 와르르 듣다 보니 뭐였는지 잊어버렸네요ㅠ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길어져서 일단 "메인"
일단 흰 종지에 담긴 것부터 설명하자면 갯장어(하모) 껍질과 모즈쿠 초절임, 다시마키타마고(계란말이) , 그 옆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것이 다시마에 싸인 사바즈시, 은행 잎에 덮힌 종지 안에 든 것이 유바, 계란말이 바로 밑에 있는 얼룩덜룩한 것이 가츠오다시를 젤리처럼 굳혀서 안에 뭔가를 넣은 것 (...인데 한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입수하다보니 기억을 못 하겠네요ㅠ), 그 옆에 살짝 붉은 것이 묘가, 흰 종지 밑에 있는 튀긴 것이 갯장어 껍질 튀김, 그 옆에 동그란 것이 은어를 말려서 안에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둥글게 말아 튀겨낸 것, 은어 튀김 아래에 깔린 동그란 것은 쑥으로 만든 떡에 미소소스를 입혀서 덴가쿠 같은 맛이 나는 거 였고요. 옆엔 보시다시피 레몬입니다. 그 위에 꼬치에 끼워져 있는 건 고구마를 쪄서 으깨서 달달하게 모양을 만든 것이었고요, 옆에 오이처럼 보이는 건 외(うり)를 하나가츠오에 버무린 나물 같은 것입니다. 외우느라 힘들었어요 헥헥; 설명해주시고 바로 방에서 나가셨기에 빨리 받아적었지만요ㅎㅎ
갯장어나 은어 같은 제철 생선을 사용해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갯장어 껍질 튀김 바삭하고 고소한 게 완전 맛있었어요!! 전반적으로 식감에 있어서도 딱딱한 것부터 부드러운 것까지, 맛에 있어서도 새콤한 것, 짭짤한 것, 달콤한 것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 맛있었는데 그 중에 그나마 별로였던 건 유바랑 묘가...정도? 이건 조리법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재료 자체를 제가 싫어하는 것이라ㅎㅎ
교토 여행 오기 전부터 교토는 사바즈시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날생선에 아직도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저는 사바즈시가 너무 시거나 비릴까봐 기온의 유명한 사바즈시 가게인 "이즈쥬"를 몇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저걸 먹어봐 말아 고민고민 했는데 여기서 맛을 보게 되어 기뻤어요. 교토에 사는 친구한테 나 사바즈시 먹어보고는 싶은데 좀 두렵다고 하니까 친구가 한 번 배탈난 적이 있다고 해서 더 겁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맛이 있더라고요. 산미가 강한 편이긴 한데 또 지나치게 신 맛은 아니고 고등어맛도 적당히 나고요. 전혀 비리지 않았어요.
"사바즈시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네요!" 했더니
"오카미상 고향이 미에현인데 미에현 바닷가에서 직접 공수해온 고등어로 만든 겁니다." 하더라고요.
(근데 고등어는 겨울이 제철인 생선 아닌가요???)
산초와 새끼멸치를 얹은 밥과 아카다시
다음으로는 밥이 나옵니다. 다음...이랄까 메인이 나오고 조금 있다가 바로 줍니다. 아카미소를 사용한 미소시루에는 나메코가 들어있었는데 아까미소를 써서 그런지 맛이 진하고 맛있었어요. 저는 원래 산초를 굉장히 싫어해서 외갓집 가면 (경상도 쪽이라) 늘 산초 잔뜩 넣은 추어탕을 해주셔서 울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ㅋㅋ) 여기 밥(오쟈코)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산초를 잔뜩 넣지만 않으면 괜찮은 가봐요ㅎㅎㅎ
수박과 멜론, 그리고 시소 셔벗과 사과와 사쿠라 절임으로 만든 셔벗
마지막으로는 디저트! 시소 셔벗도 사과와 사쿠라 소금 절임 셔벗도 둘 다 완전 색다르고 상큼하면서 맛있었어요. 전 시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맛있게 요리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여기서 직접 만드는 거라 좀 금방 녹아버리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었어요.
전체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코스였어요. 먹으면서 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고요. 일본 구르메 사이트인 타베로그에서 평점도 굉장히 높은 곳입니다. 예약을 꼭 하셔야 하는 가게이긴 하지만 점심 코스에 미니 카이세키 정도면 크게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니까 교토여행 가시는 분들 중에 맛있는 일본 코스요리를 적당한 가격에 먹고 싶다 하시는 분들께 권할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쿠탄이나 쥰세이같은 유도후 코스로 유명한 곳들이 보통 3000~4000엔 정도 하는데 그런 매뉴얼화된 곳이랑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오쿠탄도 두부 종류는 나쁘지 않았어요... 단지 튀김이 형편없는데다 두부는 맛있어도 어디까지나 두부일 뿐이죠ㅎㅎㅎㅎ)
일본어 가능하신 분은 타베로그도 참고하시면 좋을 듯
→http://r.tabelog.com/kyoto/A2603/A260301/26000391/
점심은 12시~13시까지, 저녁은 17:30~19:30까지만 영업합니다.
예약제이고 전부 코스 메뉴만 있어요. 제일 저렴한 것이 제가 먹은 거고요.
전화번호는 +81-75-531-0202 인데 영어 대응이 가능한지는 확인 못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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